2007년 01월 31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아무래도, 제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은 바로 이 책이겠지요. 1996년 즈음, 당시 신생 방송국이던 ITV(인천방송)의 한 토크쇼에 나온 '김창환'씨가, 최근 읽고있는 책이라며 소개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답니다. 그 때 우연히 그 방송을 보다가 '제목이 꽤 멋지네~!'라고 생각했었어요.
1998년 봄, IMF에 의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남 사천시 용현면 통양리의 할머니 집에 맡겨지게되었습니다. 학교도 '용남중학교'란 작은 시골학교로 전학을해야 했고요. '도시에서 온 이상한 억양의 아이'라는 이유로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던 저는 그 작은학교에는 어울리지 않는, 큰 학교도서관에 파묻혀살디시피 했습니다. 점심시간이나 수업이 끝난 후면 늘 도서관에서 세상 모든 책을 읽어버릴 듯한 기세로 책을 읽었지요. 해가지고, 학교 문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터벅터벅 시골길을 걸어오거나, 자전거를 타고서 논두렁길을 달려왔답니다.
아마 여름이었을거에요. 제가 그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별들 사이를 누비는 운동화가 그려진 하얀 표지의 이 책은 1권을 펴는 순간부터, 절 무거운 현실을 잊고 날아오를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15세의 우울한 소년은 소설을 읽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이 모든 불합리한 상황들은 애초부터 이 우주란 곳이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란 것에서 희망을 얻은 것이지요.
그 후 제 생활은 좀 더 여유있게 변했습니다. 밤이면 바닷가에서 UFO를 기다리기도 했고, 남몰래 추락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날아오르려 시도해보기도 했었지요. 세상 모든 것에는 펜저치의 그림 속 뗏목에 달려있었던 돛처럼 알아서 잘 되게해주는 힘이 있을거라고 믿기 시작했고 말이에요. 어쩌면 그 때 부터 전 우주적이며 무한불가능한 확률을 가지고있는, 제게 맞는 인연이 있을거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네요.
그 때 제가 읽은 것은 '새와 물고기' 출판사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였습니다. '김장환'씨가 번역했었는데, 그 때 전 그 책을 산울림의 '김창환'씨가 번역했을거라고 믿었지요. 그리고 가끔도 두분의 이름이 헷갈리기도해요. 하여간 그 책은 4권까지만 번역이 되어있었기에, 4권에 나오는 사건들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인줄로만 알았었답니다. 무려 3년 동안이나요.
1999년 여름 전 어느새 정이든 용남중학교를 떠나 대구로 전학을가게 됩니다. 도서관의 이 책과도 헤어져야했지요. 전학을 가기 일주일 전부터 이 책의 내용을 최대한 암기하려애쓰던 기억이 나네요.
그 후 2000년까지, 새와 물고기 번역의 책을 찾느라 애썼답니다. 서점에는 없었기에, 대구 중앙로 근처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찾아다녔지요. 그 와중에 부가적으로 구하게된 책들이 버트란트 러셀의 '철학적 농담'과 '캐치-22'와 같은 책들입니다.
2000년 겨울 캐나다로 유학을 가있던 친구 녀석이 제게 'The Ultimate Hitchhiker's Guide'란 이름의 Html파일을 보내줍니다. 2메가바이트 정도의 용량이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전 놀랄 수 밖에 없었답니다. 왜냐구요? 그 문서에는 5부인 Mostly Harmless가 실려있었거든요!
5부의 내용은 당시 제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펜저치는 사라져버렸고, 아서에겐 딸이 생겼고, 자포드는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지구는....!
겨울 내내 그 책을 번역하며 전 이 책이 완결편이 아닐거라고 믿었습니다. 분명 다른 이야기가 더 있을거라고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2001년 작가인 더글라스 아담스가 자신의 소설처럼 말도 안되게 세상을 떠나버리고 맙니다. 그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되는 순간, 책상 앞에 엎드려선 울어버렸던 기억이 나는군요. 제가 이 책을 통해 알게된 희망이라는 것. 그런데 그 것의 마지막 조각마저 사라저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히치하이커가 없다니, 아서는? 펜저치는? 포드는? 트릴리안은? 슬라티바티페스트는? 자포드는? 아니, 그 무엇보다 지구는?
그 후 별볼일없는 고3시절을 보내고 수능을 치루면서, 전 5권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되었습니다. 부조리한 우주. 일어날 것은 어차피 일어나는 거고, 우주 전역을 돌아다녀봤자, 있어야할 곳은 지구 밖에 없는 겁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봤자 전 우주적인 시스템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겁니다.
대학 생활이 시작되고, 남들과 똑같은 대학생활을 보내던 전 학교 도서관에서 다시 이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새와 물고기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요. 김장환씨의 번역은 다시 읽어도 마음에 들었고, 한글로 읽었을 때의 느낌은 원어로 읽을 때 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단어를 머리 속에서 해석할 필요가 없어서였겠지요.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날. 전 억지로 깔깔거리며 이 책을 읽어대다가 기숙사 앞 잔디밭에 누워 UFO를 기다렸답니다. 흐르던 눈물 때문에 북극성이 UFO로 보일 때 까지요. 그 무렵의 전 이 책을 읽으며 어차피 이 곳으로 되돌아오더라도, 한번쯤은 이 지긋지긋한 지구를 벗어나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 후에 만들어진 것이 이 블로그입니다. 현실 도피였고, 제 쓸데없는 생각들을 마음껏 배설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저만의 히치하이커 안내서를 만들고 싶었고요. 이 블로그는 슐츠란 이름의 인터넷이라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겪게되는 여행 기록입니다. 그게 바로 '이상한 일들에 대한 애매모호한 목격자의 해독 불가능한 목격담'이지요. 그리고 그러면서 많은 다른 여행자분들을 만난 것 같습니다. 블로그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셨던 Mithrandir님, 개설 초기 제 블로그 단골 손님이셨던 제인님, 우주전사님, 세월이가면님, 그리고 가끔 제 블로그의 방문객 수를 늘려주시는 잠본이님, 초콜릿 아가씨에게도 선물을 보내주신 Julie님, 제 팬을 자처하셨던 stellar님, 영화와 SF를 좋아하시는 Sabbath님,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hansang님, 제가 군 제대 후 외로움을 타고있을 때 첫 데이트의 상대가 되어주신 체셔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맹이님, 고양이를 좋아하는 유리님, 이제는 진짜 레이디이신 Nariel님, 사진을 잘찍으시는 creamy令님, 군대에서 만나게된 길시언님, 그리고 Damon님, 건무님, 위스테리아님, eliot님, 잰짱님, Color님, 등등. 정말 수많은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위에 적지 못한 분들, 그리고 지금까지 보잘것 없는 이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도, 그냥 보고만 가시는 분들도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이 블로그를 만드는 계기가 된, 지금은 하늘에 계실 더글라스 아담스 씨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책이 제 인생에 미친 영향은 이렇게나 크답니다.
덧글 : 처음엔 책에 대한 사연을 쓰려했는데, 쓰다보니 블로그 이야기가 되어버렸군요. 뭐, 제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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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01/31 12:54 | 우주, 그리고 모든 것들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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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끌리는 책인것 같습니다. 서점에서 가끔 출몰(?)해서 이런책도 있구나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길시언님//글쎄요. 언제가 좋을까요? 다음주에는 시간이 될 것 같은데.
Needle님//저도 대학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때, 그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답니다. 현재는 영문판과 2005년 번역판 둘 다 가지고 있지만요.
......
...
......그냥 3권에서 끝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OTL
비공개님//앗, 제가 전화를 잘 안받아서요. 요즘엔 일도 많이 있었고.
잠본이님//제게는 4권이 실질적인 엔딩입니다.
비공개님//언제나 감사합니다~! ^_^
우주는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을뿐만 아니라 멧돌마저 없는 그런 곳인거 같아요. 그래서 웃을수 있는 여유가 중요한 거겠죠.
제 생각에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 대책없이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용케 새와물고기 번역으로 4권 다 있었는데 그중 1,2권을 여친한테 빌려줬다가 헤어지는 바람에 못 받은 가슴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인도 여행하다가 배낭여행자들 모이는 동네 헌책방에는 어김없이 한두 권씩은 있어서 사서 보다가 되팔곤 했죠
슐츠님, 저도 슐츠님 덕분에 히치하이커 읽었어요~ 다 읽고서 완전..그 커다란 세계에 잠시 숨이 막혔더랬죠.
제 동생한테도 나름 추천해줬는데, 그 분량에 질렸는지;; 별로 안 들여다보더군요;
ㅎㅎ 언젠가 읽게 되면 그 즐거움을 알겠지요.^^
더글러스 애덤스의 영국식 유머는 정말 제 찌들었던 군생활에 한줄기 신성한(?) 불빛이었다고나 할까요. 50세 나이에 러닝머신 타던 중 돌연사라니..뭔가 냄새가 나는 죽음이지요. 어쩌면 자기 별로 돌아가신게 아닐까요? ^^;;
더글러스 애덤스의 다른 책을은 번역본으로 나온 것이 별로 없는데,
'마지막기회'는 있더군요. 멸종동물 탐사에 관한 책인데. 역시 더글러스 특유의 유머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미 보셨을 것 같지만, 혹시 아직 이시라면 추천드립니다.